행복한 동행

좋은 글 2010. 9. 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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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

 

15센티미터씩 앞으로(‘행복한 동행’ 중에서)


1989년 7월 18일. 미국인 마크 웰먼은 캘리포니아의 암벽 엘 카피탕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등반 성공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웰먼은 1982년 등산을 하다가 암벽에서 떨어져 허리 아랫부분이 완전히 마비됐다.

이 정도 사고라면 인생을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수차례의 반복 훈련을 통해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한 번에 조금씩 올라간다면 과거처럼 산을

정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고는 계획에 따라 철저히 준비했다.

엘 카피탕 등반에 나선 그는 친구가 걸어 준 로프를 잡고 1천 미터의 암벽을 올랐다.

오직 팔의 힘만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는 한 번에 15센티미터씩 자기 몸을 끌어올렸고 그렇게 7천 번을 당기는 데 9일의 시간이 걸렸다. 정상에 오른 뒤 그는 말했다.

“계속 15센티미터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결심한다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쌓을 때 하루에 가로 1미터, 세로 1미터씩 꼼꼼하게 쌓도록 목표를 세우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처럼 웰먼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단기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면 의욕이 생겨서 다른 목표를 또 이루고 싶어진다고 말한다.


큰 목표를 세우면 폼도 나고 뿌듯함도 느끼겠지만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히

명확한 단기 목표를 세워 하나씩 이뤄 가는 것이다.

목표 달성 기간을 너무 길게 잡으면 목표가 희미해지고 의욕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부족함을 통해 배운 것(‘행복한 동행’ 중에서)


말썽꾸러기 아들을 둔 미숙 씨는 학교로 나오라는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공부를 못하면 얌전하기라도 해야지. 당신 아들 때문에 마음 놓고 애를 학교에 보낼 수가 없어요!” 오늘은 또 누구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한구석에서 벌을 서고 있는 아들과 반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상대방 아이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고개를 잔뜩 조아리며 천천히 다가섰는데 갑자기 상대방 아이 어머니가 미숙 씨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더니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웃어 보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따뜻한 위로였다.


“어떻게 우리 아이의 잘못을 꾸짖지 않고 제 심정까지 헤아려 주시나요.”

그러자 상대방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다 우리 아이 덕분이에요. 제겐 아이가 더할 나위 없는 스승이랍니다. 제 아이가 공부를 정말 잘했다면 전 공부 못하는 다른 아이들을 싫어했을 거예요. 제 아이가 장난도 치지 않고 얌전했다면 말썽 피우는 아이들을 한심하게 여겼을 테죠. 하지만 우리 아이도 한없이 부족하기에 제겐 세상 그 어떤 아이도 사랑스럽게 보인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말썽을 피워도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제겐 편견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니까요.”

미숙 씨는 순간 눈물이 솟았다. 그리고 자신 곁에 서 있는 아들의 빛나는 가치를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다.



장군의 말고삐라도 잡겠소(‘행복한 동행’ 중에서)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남북전쟁 당시 그는 전선의 소식이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장병들을 진두지휘하느라 애쓰고 있는 연합군 사령관 맥클렐란 장군을 백악관으로 부르는 대신, 위험을 무릅쓰고 몸소 장군의 숙소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대통령과 각료 일행은 장군의 숙소에 도착해서 장군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나타난 맥클렐란은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곧장 2층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황한 부하들이 쫓아가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지만, 그는 “대통령께 난 너무 피곤하니 그냥 돌아가라고 전하시오.”라고 말할 뿐이었다.


장군의 무례한 행동은 링컨 대통령과 국방장관에게 전해졌고, 화가 난 국방장관은 “즉각 맥클렐란 장군을 해임시켜야 마땅합니다!”라며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은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을 뿐이었다.


잠시 뒤 링컨이 입을 열었다.

“나는 맥클렐란 장군이 반드시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 것이라 믿습니다.

이 유혈극을 끝맺는 데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맥클렐란 장군의 말고삐라도 잡겠습니다.”

리더십은 권위를 바탕으로 한 명령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 리더십은 큰 성공을 위해 작은 권위를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기초를 다지게 된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부하 장군의 말고삐라도 잡을 수 있다는 링컨의 겸손. 그것이 바로 링컨의 업적과 승리를 더욱 값지고 의미 있게 만든 리더십의 비결이었다.



질문은 걸작을 낳는다(김승희, ‘행복한 동행’ 중에서)


“나는 어디서 태어났는가? 나의 집은 어디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끔씩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답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보십시오.”


이 이야기는 ‘갈매기의 꿈’의 작가인 리처드 바크가 한 말이다.

리처드 바크는 청소년 시절부터 취미로 비행을 하면서 느꼈던 내적인 질문을 엮어 ‘갈매기의 꿈’을 집필했다.

이 책의 단어 수가 총 1만개를 넘지 않고 갈매기가 하늘을 나는 사진이 대부분이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다른 갈매기들과 달리 먹이를 찾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먹이 그 이상을 위해 높이 높이 날아오른다.

일상적인 삶에 익숙해져 꿈을 잊거나 포기하고 살던 사람들은 이 갈매기를 통해 많은 감동을

받았다. 출판 이듬해에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여운이 긴 명작이다.


하지만 1972년에 ‘갈매기의 꿈’을 출간하기까지 그의 원고는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리처드 바크가 원고를 완성한 것이 1970년이었으니 빛을 보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출판계의 관행으로 봤을 때 그와 같은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갈매기의 꿈’은 출간된 지 1년 만에 100만 부가 넘게 팔려 그 당시 미국에서 가장 많은 판매 부수를 올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기록을 깰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갈매기의 꿈’은 리처드 바크처럼 사람들에게 내면을 향해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결국 내면의 질문이 걸작을 낳은 것이다.



한 손으로 쳐도 음악은 음악(‘행복한 동행’ 중에서)


음악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피아노에 두각을 나타낸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도쿄에서 음악대학을 졸업한 뒤 핀란드로 날아가 활동을 시작했다.

핀란드의 한 오케스트라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며 세계 각지에서 3천 회가 넘는 연주회를 열었고, 1백 장 이상의 연주 음반을 냈다. 어느덧 그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2002년 1월, 그는 헬싱키에서 데뷔 40주년 기념 연주회를 가졌다. 그런데 마지막 곡을 연주하던 중 갑자기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간신히 연주를 마친 그는 무대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뇌졸중이었다. 이제 그의 음악 인생은 끝났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하지만 1년 뒤 그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전과 달라진 것은 마비된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대신, 왼손으로 놀라운 연주 테크닉을 발휘한다는 것.


현재 일흔두 살의 노령이 된 일본인 피아니스트 다테노 이즈미의 실화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삶의 전부였던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그는 실의와 좌절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간 몇 장의 왼손 악보가 그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무심코 악보를 보며 왼손으로 건반을 두드리던 그는 서서히 울려 퍼지는 선율 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한 손으로 하든, 두 손으로 하든 음악은 음악이라는 것이었다.

왼손 하나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가 가능했다.


지금도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다테노 이즈미.

비록 그는 뇌졸중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집념이라는 내면의 힘이 더해진 아름다운 연주로 수많은 관객들의 가슴속에 뜨거운 감동과 삶의 열정을 불어넣고 있다.



행복의 옷(‘행복한 동행’ 중에서)


많은 것을 가졌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왕이 있었다. 어느 날 왕은 스승을 찾아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왕의 고민을 들은 노스승이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의 옷을 입으시면 됩니다.”


다음 날, 왕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의 옷을 가져오라는 방을 나라 곳곳에 붙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왕이 홀로 짐을 꾸려 찾아 나섰지만 어느 곳에서도 행복을 자처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던 어느 날, 왕은 멀지 않은 곳에 들려오는 아름다운 피리 소리에 잠이 깼다. 왕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가 피리 부는 사람에게 물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피리 소리요. 무척 행복하게 들리는데, 당신 마음도 그 연주처럼 행복하오?” 그러자 피리를 불던 사내가 말했다. “그럼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거든요.”

“당신의 옷을 내게 파시오! 돈은 얼마든지 주리다!” 왕이 기쁨에 겨워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나는 당신에게 줄 옷이 없어요. 어두워서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지금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아요. 어제 지나가던 불쌍한 거지에게 마지막 남은 옷을 적선하고 말았답니다.”


왕은 그제야 스승이 말한 ‘행복해지는 옷’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행복은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을 남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의 기쁨이었다. 왕궁으로 돌아간 왕은 그동안 쌓아 둔 재산을 풀어 가난한 백성을 구제했다. 그리고 진정 행복해졌다.



크게, 길게, 온몸으로 웃자(김서곤, ‘행복한 동행’ 중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종종 무엇을 깨달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깨달음’이란 단어는 10여 년 전에 출간된 ‘의식혁명’에 나오는 의식의 지도를 떠올리게 한다.  의식의 지도에서는 대수의 수치가 200이면 긍정의 감정에 도달한 용기의 수준으로 보고 700~1000이면 성인의 수준, 즉 예수나 부처님의 경지에 달한 것으로 본다.

겨우 200이 될까 말까 한 나는 깨달음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부담스럽기만 하다.


경영자라면 누구나 조직원들에게 긍정적 사고를 요구한다.

우리 회사 역시 긍정적 사고를 하도록 하는 교육에 집중해 왔지만 그 효과는 항상 의문이었다. 생각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우리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다.

공동체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올해 초 나는 우리 조직원들에게 한 가지 좋은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어, 고심 끝에 ‘웃음’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매출 증대나 제조 생산성 향상’ 이전에, 오직 ‘웃어라’에 초점을 맞추고 교육 예산의 대부분을 투자했다.


크게, 15초 이상 길게, 온 몸으로 웃는 웃음은 그리 쉽지 않았다.

직원들은 비싼 돈 들여 웬 웃음 교육이냐고 의아해했지만 나는 웃음의 효과를 굳게 믿었다.

나를 비롯해 부서장들부터 아침에 출근하면 ‘하하하’, 식사하기 전에 ‘하하하’, 회의 시작 전에도 ‘하하하’하고 마구 웃어 댔다. 그렇게 시작된 웃음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전 직원에게 퍼져 갔다.


지금 모든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있다.

우리 회사도 얼마 전 자금 유동성을 걱정하던 중 한 기관으로부터 수십억 원을 투자 받았다.

그 투자 기관 임원의 말에 의하면 투자를 위해 회사 탐방을 온 날 우리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온 직원들의 웃음 잔치를 보고 ‘이 회사에 투자해도 안전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투자 유치의 결정적 사유가 되진 못했겠지만 분명한 것은 웃음이 바로 긍정의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요즘처럼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나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세상을 향해서, 또 자신을 향해서 크게, 15초 이상 길게, 그리고 온 몸으로 ‘아하하하’ 웃어보자.

그 웃음이 우리에게 행운으로 혹은 능력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Posted by 장돌